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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은 형성자체가 왜곡
글쓴이 : 동포  (49.♡.69.62) 날짜 : 2019-08-10 (토) 13:37 조회 : 547 추천 : 3 비추천 : 0
http://xxbible.com.ne.kr/





♣ 정경(正經)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경(正經)을 성립시켰다. 성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조작한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지금 소위 우리가 말하는 정경 대 외경의 구분이 부재했었다. ........

그들(초대교회의 신도)의 사고를 지배한 것은 파루시아 즉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기대였다.

사도바울 자신이 자기 생전에 예수가 호령을 치면서 천사들의 소리와 신의 나팔소리를 반주로 하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확신했고 그 때는 이미 죽은 자들은 다시 살아나고 자기를 포함해서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구름에 휩싸여 공중에서 예수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었다(데전 5:16∼18).



그리고 이 미래사실이야말로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최대의 위로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바울의 상징적, 은유적, 추상적 이해가 아니다.

예수의 재림이란 그러한 사실의 모습으로 이 시간 이 공간 속에서 현실화되어 일어난다고 확신했고, 후년에 그는 재림 전에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인간적 불안감을 표시하기도 했다(빌 1:20∼25)[류형기 <성서주해> Ⅳ:561]



......대체적으로 초대교인들은 최저한 AD150년경까지는 긴박한 파루시아의 기대 속에서 살았다. 즉 자기들이 살고 있는 현세는 단순한 준비과정에 불과했으므로 현세 속에서, 즉 역사 속에서 자기 이름을 남긴다든지 역사 속에서 무엇을 성취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경전이 일차적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물론 파루시아는 계속 지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는 그들이 기다리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기다리던 영화는 상연되지 않고 계속 연기공고만 나붙은 것이다. 이러한 지연 속에서 초기 기독교는 파루시아를 비종말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비종말화는 점차적으로 역사의식의 증대를 가져오고 그러한 역사의식은 교회론으로 종결되게 된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라는 조직으로서 이 세계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포이다.



교회야말로 천국의 지상에 있어서의 역사적 표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론의 사상적 물줄기의 완성을 바로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카톨릭 교회론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초대기독교 문헌의 정경화는 이러한 교회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정경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경을 성립시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통적" 경전을 구분해 내어야만 할 필요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여튼 A.D. 150년 경까지만 해도 예수사도나 기존경전의 인물이름을 빌어 무명으로 혹은 가명으로 경을 쓰는 일은 전혀 위작의 나쁜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권장되었다. ...........



우리는 케리그마, 즉 예수의 수난,죽음,부활,승천의 보고, 그리고 그의 행위와 말의 수집이 원래 구전의 전통(oral tradition)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구전은 예수의 언어였던 아람어가 주축이었고 이 구전 자체가 희랍어로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희랍어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를 직접 경험한 사도들이 다 죽고 난 후에는 이 구전을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게 된다. 복음서의 최초의 제작은 이러한 구전의 보존을 위하여 이루어졌고, 또 구전간의 상이에서 오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 파벌들이 자기들의 구전을 기록하게된다.

그리고 교회의 성립은 교회의 예배와 의례(liturgy)를 위한 기록의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이러한 조류 속에서 제1세기 말경에는 상당수의 복음서들이 제작된다.



어떤 복음서들은 사도의 이름을 빙자하지 않고 부활한 예수의 직언이라고 하여 그 권위의 우위성을 보장받으려고 하였고 이러한 복음서들은 사도들의 충실한 기록이라고 여겨진 복음서에 대해서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단에 대해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여기는 복음서들의 정통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 정통성의 근거는 사도 저작성(apostolicity)이었다.



이 사도저작성이라는 기준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애매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기준으로는 분쟁의 결정적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고 2세기에는 이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와 알렉산드리아의 소아세아를 중심으로한 동방교회 사이에 정경의 기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심각히 대두되었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2세기 말엽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3세기의 오리겐(Origen),

4세기초의 유세비우스(Eusevius)등에 의한 신학적 논란을 거쳐 조정과정을 거치는데



당시에 널리 유행했던

히브리인 복음서(Gospel of the Hebrews),

애굽인 복음서(Gospel of the Egyptions),

바나바서(Letter of Barnabas),

12사도 교의서(Didache),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

바울행전(Acts of Paul),

베드로 복음서(Gospel of Peter),

베드로 묵시록(Apocalypse of Peter),

요한행전(Acts of John),

그리고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 등등은 여러 분류방법에 의해 외전으로 탈락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오늘의 27서가 정경으로 규정된 것은 아리아니즘(Arianism)의 비판에 심혈을 기울였던 기독교정통성의 옹호자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에 의해서였다.



라틴교회는 제롬(Jerome)의 영향 하에 아타나시우스의 결정을 받아 들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성경의 27서 형태는 4세기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4세기에 아타나시우스의 권위가 일시에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동서방교회에서는 기존의 성경을 썼다.



예를 들면 4세기 중엽의 시나이티쿠스 코우덱스판본(Codex Sinaiticlus)은 바나바서와 헤르마스서를 정경에 포함시키고 있다 시리아의 교회에서는 타티안이 편집한 디아테사론(Diatessaron)이 5세기까지 쓰였고,....... 7세기에 내려와서야 비로소 시리아에서는 27서짜리 경전이 쓰여지게 된다.

그 뒤로 1546년에 라틴 벌게이트(the Vulgate)가 인쇄되기까지 텍스트 그 자체는 계속 유동적었다.

마틴 루터는 경전성의 기준을 "사도성"과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되는 것"의 두 척도에 두었는데,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후자의 척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했으나 관습의 권위에 복종하여 이 네 편을 신약의 마지막에다가 포괄시켰다.

이러한 텍스트의 역사를 고찰해 볼 때 우리는 현존 텍스트 그 자체에 절대적 권위를 두고 일점일획이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성찰되지 않은 통념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성서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조작한 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중에서]





♣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성경의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1,200년경에나 장의 구분이 생겨나고 1,550년경에나 절의 구분이 생겨난다.



" 신약성경의 원저자의 원사본은 현존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인용된 성구들은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구절들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국론>을 번역할 때는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성경지식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 우리의 성경지식으로 번역할 수 없다.

이와같이 성경이란 원래 제멋대로인 것이다.



오늘까지 존재하는 사본 중에서 신약 27서 전체를 보전하고 있는 판본은 50종에 불과하며,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그리고 고판본은 모두 액센트와 쉼표의 표기조차도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며, 1200년경에나 장의 구분이 생겨나고 1550년경에나 절의 구분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고판본의 해독에 있어서 많은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구두점 없는 한문 고전이 갖는 문제점과 대동소이하다." [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중에서]





▣ 성서(Bible)에 대한 결론



성서는 다음과 같은 왜곡의 과정을 거쳤다. 신약성서에 대해 한 번 살펴 보자.



1) 1단계 왜곡(구전):

예수의 육성음(아람어)은 예수의 죽음과 함께 증발했으며, 예수의 말씀이 구두로 전달되던 시대가 최소한 한 세대 (30년)이상 흐른 뒤 서서히 쓰여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당시의 사람들이 기억력이 좋긴 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점일획의 왜곡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2) 2단계 왜곡(번역):

예수가 구사했던 언어(아람어)는 최초로 희랍어(그리스어)로 쓰여지기 시작한다. 즉 번역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번역에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왜곡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령 영어 번역판만 해도 100여 종이 넘는 것은 이러한 왜곡을 적게 하려는 수많은 노력과 몸부림인 것이다.





3) 3단계 왜곡(필사):

이 희랍어로 쓰여진 것조차 원본은 없다. 모두 필사본일 뿐이다. 필사본들은 하나도 동일한 것이 없으며, 필사의 과정에서 왜곡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4) 4단계 왜곡(취사 선택):

1~3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5,000종이 넘는 사본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예수가 말한 바와 가까운가 하는 것을 원문비평을 통해서 취사선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또한 약간의 왜곡이 발생한다.





5) 5단계 왜곡(번역):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비평판 그리스어 성서를 대본으로 하여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 왜곡이 일어난다.





6) 기타 왜곡:

고판본은 모두 액센트와 쉼표의 표기조차도 없는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며 장과 절의 구분시 많은 오류 발생, 정경과 외경으로 분류하는 과정(예수 사후 200년 이상 지난 후에야 현재의 27서 형태를 갖춤) , 복음서 변조(수정,가감,삭제 편집) 등의 왜곡도 무시할 수 없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전혀 일점일획의 왜곡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 내지는 사기(詐欺)에 불과하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힘이다.

그러나 과연 성서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져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걸까?

여기까지 글을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것이다.



☞ 한마디로 바이블(bible)의 원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태어나 보지도 못했다.

원본이라는 것 자체가 번역본일 뿐 아니라 복사본이다.

바이블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수없이 왜곡되었으며[注1],

그러한 결과로 모순과 오류투성이다.

교회라는 조직이 그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성경만을 정경(正經)이라고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앞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예수의 말씀도 없다.

예수가 말했던 아람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에 의해 쓰여졌으며,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다느니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사기(詐欺)이다.



아직도 이러한 사기를 밑천으로 밥먹고 사는 한심한 성직자들이 우리 주변엔 많다.

괴팅겐 대학에서 신약을 강의하는 한스 코첼만 교수는 기독교가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은 비판적 성서 연구 결과가 알려져 있지 않은 덕분임을 자인한다.

10억의 그리스도인 중에서 신학 도서관을 기웃거려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삼위일체나 예수의 신성(神性)과 같은 중요한 교리조차도 몇 차례의 종교회의를 거쳐 찬반투표로 인간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이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출처: http://xbible.glad.to


[注1] 성서의 현대어 번역에 참여했던 요하네스 레이만 박사의 말을 소개해 본다.

"복음사가들은 해석가였지 전기가는 아니었다.

그 여러 세대 동안이 흐르다 보니 모호해져 버린 부분을 밝혀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명백했던 것마저도 흐려놓고 말았다.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만들어 버렸다." [코즈믹바이블, p205]


개독들아 ...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제발 네 몸과 같이 하라. 니네 야훼의 말이다. [레위기 19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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