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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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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481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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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11[신학교(神學校]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1-05-23 (월) 14:35 조회 : 4212
[신학교(神校]

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선배 또는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떤 분야에도 선배와 스승은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 선배와 스승으로부터 기초를 배우게 되고, 여기에다 자기 재능과 노력을 보태어 자기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참으로 이상한 분야가 있다. 신학(神學)이 바로 그것이다. 바이블 내용에 의하면, 소위 선지자(예언자)라는 것도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시켜서 배출하고, 오늘의 예수교는 신학교라는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시켜 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을 배출시키고 있다.
세상의 어떤 분야라도 가르치고 배우고, 자기 재능과 노력을 첨가하여 마침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神)의 분야에서도 가르치고 배우고, 재능과 노력을 보태면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신(神)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수가 있으며, 여기에서 무슨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유리를 발명하면, 그 다음 사람이 확대경을 발명하고, 그 다음 사람은 확대경으로 세균을 발견하고, 그 다음 사람은 질병 원인을 알아 내고, 그 다음 사람은 질병 퇴치 법을 찾아 내고, 그 다음 사람은 예방 백신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자기 노력을 보태어 세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에서는 (1)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이름도 모르는 신을 덮어 놓고 받들다가, (2) 모세가 마침내 그 신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을 발견해 내고, (3) 다윗 때에 이르러서 여호와에게 사랑이 많음을 알게 되고,
(4) 엘리야와 엘리사에 이르러 여호와의 갖가지 재주를 알아 내고,(5) 예수는 여호와가 자기 아비임을 깨닫게 되고, (6) 비로소, 바울에 이르러서야 예수교라는 집단을 만들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고, (7) 마침내, 신학이 하늘 꼭대기까지 발전하여 여호와(예수)를 똥값에 팔아 먹어도 별 탈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까지 이르렀다. (8) 뿐만 아니라, 예수쟁이 탈을 쓰고서 몇 달 만 지나면, 어느 누구나 신의 세계를 훤히 아는 박사급 수준에 도달한다. 그래서, 예수쟁이는 하나도 빠짐 없이 신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는 괴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어떤가? 이렇게 신(여호와=예수)의 분야도 가르치고 배워서 발전시킬 수가 있는가? 여기기에다 자기 노력과 재능을 더하면 마침내 박사급 수준으로 발전하여 신의 세계를 훤히 알게 되는가? 마침내, 이 재주로 교회를 세워 사람들을 꼬여 들이고 재물을 갈취하여 먹고 살면 되는 것인가? 아니라면, 신의 세계를 누가 어떻게 가르칠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 신의 세계에다 무엇을 보태고 노력하여 무엇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신학교라는 곳에서는 목사 신부도 배출시키고, 신학자라는 것도 만들어 낸다.
바이블을 처음으로 기록한 자들과 신의 섭리를 알아 내어 일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예언자)들도 교육으로 배출하고 있다. 어떤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결국, 신(神)의 세계를 가르치는 자도 사기꾼, 배우는 자도 사기꾼, 여기에다 어떤 노력을 보태서 전문가(목사, 신부, 신학자 등등) 노릇을 하는 자도 모두 사기꾼일 뿐이다. 예수교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통째로 사기꾼 집단이다.

신학교라는 곳에서는 신의 전문가(목사, 신부, 신학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아래 바이블 구절들은 <선지자 생도> 또는 <예언자 수련생>을 모아 놓고 교육시키던 흔적이다. 다시 말해서, 신의 세계를 알아 내는 재주를 교육이나 훈련으로 취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제 바이블 내용을 보기로 하자.
아래의 바이블 구절은 신학교를 만들어 놓고 신학생(선지자 생도, 예언자 수련생)들을 교육시키던 흔적이다. 이 신학교에서 배출된 선지자(예언자)들이 바이블도 쓰고, 여호와(예수)의 섭리도 찾아 내어 풀어냈던 것이다. 학교라는 것을 차려 놓고 신을 가르치고 배웠다는 것이다? 정말로 귀신이 곡을 할 일이다.

1)[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개역 (열왕기하 9;1)
2)[예언자 엘리사가 한 예언자 수련생을 불러 일렀다.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가지고 라못길르앗으로 가거라."]--공동 (열왕기하 9;1)

1)[선지자의 생도 오십(50)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엘리야와 엘리사)이 요단가에 섰더니]--개역 (열왕기하 2;7)
2)[예언자 수련생 오십 명이 뒤를 따라가다가 두 사람이 요르단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공동 (열왕기하 2;7)

1)[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개역  (열왕기하 6;1)
2)[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을 모시고 사는 이 곳이 너무 좁습니다."]--공동 (열왕기하 6;1)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1-07-29 (금) 00:36

["엄마, 밥이 뭐야?"]

 


5 살 먹은 아들 녀석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밥이 뭐야? 하고.



그래서, 엄마가 설명해 주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영양소들을 공급해 주어야 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주로 주식과 부식으로 그 영양소를 해결하고 있단다.
이 때, 그 주식과 부식 중 전자인 주식을 다른 어휘로 <밥>이라고 칭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이제 밥이 무엇인지 알았지?

어떤가?

5 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 아들에게 위와 같이 설명해 주면 되겠는가?

5 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에게 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방법은 2 가지뿐이다.

하나는, 식사 시간에, 그릇에 담겨 있는 실물(밥)을 가리키며 이것이 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실물(밥)이 없이 이론으로만 설명해야 될 경우, 밥은 밥이란다.

밥의 뜻을 설명해 줄 때, 밥은 밥이다. 이상으로 훌륭한 답변은 있을 수가 없다.

밥보다 더 쉬운 낱말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밥은 밥이다.는 밥을 해설하는 가장 훌륭한 답변이다.

각설하고………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의 전철역 광장에는 요즈음 거의 매일 2 사람이 광고지를 나누어 주며 선전(광고)을 하고 있다.

하나는, 신문 좀 구독해 달라고 선전하는 보급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좀 믿어 달라고 떼쓰는 예수쟁이다.

조금 전, 전철 광장을 지나 귀가하는 길에도 어김 없이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하며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만 생각을 정리해 보자.

예수님을 믿어 보세요.

다시 말해서, 인간의 결심(작정) 여하에 따라서 신(神)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까?
믿어 보려고 마음을 정하면 예수가 믿어지고, 믿으려고 하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 존재가 예수교의 신(예수)인가?

OO 신문 좀 구독해 보시죠? 하는 권유를 받았을 때는 사람이 그 가부를 결정할 수 있다.

시문을 구독하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읽지 않기로 작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란 것은 인간이 믿으려고 작정한다고 해서 믿어지기도 하고, 믿지 않으려고 결심한다고 해서 믿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신의 세계는 인간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경지일 뿐이다.
예수교의 바보 모습을 여기까지 설명해 주어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5 살 먹도록 밥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밥을 설명해 주는 일보다 훨씬 더 불가능한 일이다.


밥은 밥이다.
바보는 바보이다.
예수쟁이(바보)는 바보이다.
이런 걸 논리라고 할껄!
제삼자 2011-08-11 (목) 05:41
[먼저 말하면 임자? 그래서 나도]


 인류 역사상 <사랑>을 가르친 성현(聖賢)은 많다.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위인(偉人)도 많다.
 그런데, 예수교라는 곳에서도 그럴싸한 말 몇 가지를 나열해 놓서 그것이 장해서 우쭐댄다.
 "앉은뱅이 뭣 자랑하듯 한다."는 말이 있거니와, 마치 예수교(쟁이)를 빗대고서 만들어진 격언 같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이 자랑하는 바이블 내용 중에서 한 가지를 다른 각도에서 음미해 봤다.
 말(言)로는 못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예수쟁이들만 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예수교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예수쟁이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예수교로 세뇌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우주의 자연 질서를 즐거워하여,
그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스르르 즐기는도다.
저(그런 사람)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
예수쟁이는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마침내, 예수교는 많은 사람의 조소를 면치 못할 것이며,
예수쟁이는 일반 대중의 모임에도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일반 대중의 길은 하늘이 인정하시나,
예수교의 길은 바보 천치들의 행진이로다.]

 (시편 1 편) 
제삼자 2011-08-12 (금) 06:00
[자신의 부모 형제도 믿지 않은 예수]


다음 이야기는 조금 신경을 써야 들리는 말 이다.


(1) 예수는 잡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숨어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
그러자 그 형제들이 권한다.

" 형(예수)님, 집(또는 근처)에서만 그 멋진 기적(권능)을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서울(예루살렘)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도 그것을 보여 주시오."라고.

바이블을 보자.

[...그(예수)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요한 7;1~4)


바이블 내용으로 보아 예수의 형제들은 자기 형 예수가 행하는 일(기적과 권능 등)을 여러 번 보아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형 예수가 그 기적과 권능을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이다.


(2) 그런데 바이블은 이상한 말을 한다.

[이는 그(예수)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한 7;5)


예수에게 여러 사람 앞에서 적극적으로 기적과 권능을 보여주라고 권한 것은 분명 예수를 믿고(알고) 있기 때문에 권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가리켜, <예수의 형제들도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바로 바이블 기자의 능력(지적) 부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이블은 신(神)의 말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한 어떤 사람의 글이란 것을 증명한다.

바이블에는 이런 장면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필자의 글 재주가 별로 좋지 못하여 알리기를 주저하고 있다. 우선 재미가 없어 읽어 줄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3) 바이블의 기록을 그대로 믿고서 한 마디.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생활하는 부모 형제도 믿지 못하는 예수를 남에게 믿으라는 경우는 무엇이며, 또, 믿는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은 허구, 모순, 궤변일 뿐이다.
그런데도 무엇인가를 더 설명하고 변명하려는 예수쟁이들은 사람일까?

심지어 어느 예수쟁이(캐나다에서 박사학위 공부하는)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옳고 그른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무슨 방법으로든  인간이 하나님(예수)에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인도하기만 하면 족한 것이다."

어느 신부와 신도 사이의 대화에 이런 것도 있었다.

"심부님, 어느 학자의 말에 '바이블 내용은 많은 부분이 허구로 짜여져있다' 고 하던데,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것은 학자들이나 떠들게 놔두고, 교우님은 그냥 바이블 속에 좋은 말씀이 있겠거니 하고 믿으시면 됩니다. 아셨죠?"
제삼자 2011-08-20 (토) 05:29
[장구 치고 북 치며 놀기]


인간이 생각하는 신(神)이란 어차피 허황된 말장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에서 지나는 것은 모두 사기꾼의 혹세무민(惑世誣民)일 수밖에 없다.


1) [예수께서...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예수)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

(마태 16;13~14)


예수 당시의 히브리 사회는 지금의 한국보다 종교적 습성이 만연되었던 그런 사회였을 것이다.
미개 사회라는 것이 다 그러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런 사회에서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 행세를 하고 다녔다면, 그 반응은 심각할 정도로 구구했을 것이다.

우선, 기존 종교의 지도자들 쪽에서는 예수를 이단 또는 마귀로 판단하여 죽이려 할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무지몽매한 일반 대중들은 자기들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답이 1. 세례 요한, 2. 엘리야, 3. 예레미야, 4. 선지자 중 하나, 이런 것이다.
그들이 아는 것(?)이란 이런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아무리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떠들며 돌아다니더라도, 인간이 그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인간은 신(神)을 알 수가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종교에 빠져들어 돈과 노력과 시간,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는 이유도 결국은 인간이란 신(神)을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불행들일 뿐이다.


2) [(예수) 가라사대, "너희(제자들)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主=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여호와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베드로)아, 네가 복(福)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호와)시니라."]

(마태 16;15~17)


소위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구세주(救世主)이며, 살아서 움직이는 여호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스승과 동거동락(同居同樂)하고 있는 예수의 12 제자들도 알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도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 여호와 쪽에서 알려 주고 조종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신(神)에 관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신(神) 쪽에서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놀음을 해야 되는 게 인간이다.

그나마도, 신의 복(福)을 받은 자 즉, 신의 꼭두각시놀음을 해야 되는 자는 오직 베드로 한 사람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말만을 의지해서 천당 길과 지옥길 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되는 경우일까?
어찌하여, 여호와는 베드로에게만 가르쳐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을까?


3)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婢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否認)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마태 26;69~70)


예수가 체포되어 대제사장 앞에서 신문(訊問)을 받는 동안,
일의 귀추가 궁금해진 베드로가 법정(?) 바깥마당에 왔다가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변명하는 말이다.

베드로는 여호와로부터 직접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배운 자이다.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정확한 알음알이 또는 믿음이란 없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죽음이 두려워서 변명하기에 급급하다. 이런 경우, 예수교는 말한다.
"인간은 연약하고 믿음이 약해서 넘어질 수 있다."고. 그러나 궤변일 뿐이다.

실험(實驗)해 볼 수 없는 현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것을 아무 데나 마구 써먹는 이론(?)들이 예수교의 주무기(主武器)이다.

실험(實驗)을 해 볼 수는 없지만, 신(神)을 아는 자나, 확신(確信)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급한 상황을 만나면 일단 변명으로 자신부터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신의 목숨과 계집을 지키려고 <속임수>를 동원한 짓도, 실제로는 신(神=여호와)을 믿지 못한 결과이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예수의 행위 즉,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라든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따위의 언행으로서, 예수는 이미 신(神)의 아들은커녕, 신(神)의 속성조차 전혀 모르던 무뢰한이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바이블 속의 주인공인 예수(여호와)의 언행을 비롯하여,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다윗, 베드로, 바울 등등의 모든 언행들은 신(神)을 모르고서 되는 현상들이다.
지금의 예수쟁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미개 시대의 인간의 어리석은 언행이 글씨(바이블)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옛 사람들의 어리석었던 언행에 매달려 골수 분자로 세뇌되는 현상을 어찌 '재미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문제는, 그 모든 것이 저 멀리 중동 지방에서 고대 시대에 벌어졌던 미개인들의 씨족 신 내지 미신이라는 점이다.

이제라도 제 정신을 차릴 때이다.
여기는 찬란한 역사(歷史)를 가진 배달 민족의 대한 민국(大韓民國)이란 말이다.



(참고; 위의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예수와 베드로가 짜고서 벌일 수도 있고, 베드로는 간사한 자로서 아부를 잘했으며, 이런 입 발린 칭찬도 즐기던 예수였을 것이다.

현재도 이런 짓을 벌이며 교세를 확장하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제삼자 2011-08-23 (화) 00:56
[여호와의 극단적 편애]


여호와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속량(贖良=종을 풀어 주거나 남의 고통을 대신 갚아 줌)하기 위하여, 이방 민족을 대신 죽일 것이라 한다.
이스라엘(예수쟁이) 족속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방 민족을 희생양(犧牲羊) 즉, 제물로 소모시키겠다(죽이겠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아, 너를 창조하신 자(여호와)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죄에서 구함)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指名)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대저 나는 여호와 네 신(神)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니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贖良物)로, 구스(에디오피아)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이방 민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 말라... "]

(이사야 43;1~4)


위의 바이블 구절을 신학자(예수쟁이) J. Burnier는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본문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다(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사야(여호와의 선지자)는 단순히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구원과 그리고 속량의 상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J. Burnier는 위의 바이블 구절에 악(惡)이 내포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역사적 신앙'으로 무장되고, 역시 예수교로 자기 지위를 확보한 기득권자로서 그는 두리뭉실 변명으로 오리발을 내밀게 된다.
그러나, 이토록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바이블을 J. Burnier 식으로 해석해도 될까?

일반 예수쟁이들은 이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예수교 역사가 피로 물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위의 바이블 구절을 두고, 독자들과 예수쟁이들의 반응을 듣고 싶다. 뜻 있는 독자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
제삼자 2011-08-23 (화) 23:27
[나의 경험과 나의 의견]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렇습니다.

(1) 필자가 처음으로, 바이블(여호와=예수) 속에서 사람 죽이는 이야기, 사람에게 악신(惡神) 집어 넣는 이야기, 비 윤리적 활동도 서슴지 않는 이야기, 비 과학적 비 논리적 이야기 등등을 지적하여 발표했을 때,

"그런 내용이 바이블에 있을 리가 없다."
"거짓말 하지 말라."
"바이블 어디에 그런 말이 있단 말이냐?" 심지어는
"너 죽고 싶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 등등의 공갈 협박이 난무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30 여 년 전이나 10 년 전까지도 마찬 가지였었습니다.
그런데,1999 년과 2000 년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특히 장로급 예수쟁이)들이 그 바이블의 모순성과 악독성에 대하여 놀라워하면서 필자에게 응원하기도 했었습니다.

예로서, 조선일보 독자 마당과 청와대 게시판에서는 수 백 명의 독자들이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는데, 그 논쟁들의 근간은 거의 모두가
"바이블에 그런 내용이 있었느냐?"
"믿음 생활 수 십 년에 처음으로 알게 되는 일이다."
"예수쟁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억울하다." 등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바이블은 그렇게 해석하는 게 아니다."
"바이블은 전체의 흐름으로 파악해야 되는 것이다."
"바블은 역사 비판적 안목으로 봐야 되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해야 바이블은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등등의 궤변이 나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들이 불과 10 년 전부터 벌어지는 현상들입니다. 엄청난 변화들이라고 자신합니다.
다시 4~5 년 후에는 어떤 종류로든 결판이 나리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2) 지금 각종 게시판에 나타나서 바이블(예수교)을 감싸고 돌며 궤변을 떠들어 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직 생활 기반이 잡히지 않은 목사(전도사) 수준급들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런 궤변들에다 일일이 답변하고 응수하게 되면, 좋은 글들이 뒷면으로 밀려나게 되고, 게시판이 너무 복잡하여 뜻있는 독자들의 정신을 혼돈시켜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여 안티 활동의 효과를 반감하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교의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알리고, 바이블의 모순을 조용히 그리고 줄기차게 알려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쟁이들도 분명히 사람 껍데기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블의 모순과 악독성과 예수교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알게 되면, 설교하는 자도 그것을 듣는 자도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계기와 인연이 맞는 때를 당하면 서서히 예수교와 멀어지는 현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바이블의 모순과 악독성 및 예수교의 더러운 역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변명해 보려고 갖은 궤변을 동원하지만, 결국은 그들도 예수교를 떠날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3) 여기에다 오프 활동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가 되겠지요. 어서 시민운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뭔가 의견을 내놓으려고 힘차게 출발은 했으나, 역시 나이 탓인지 정신이 집중되지도 않고 헛소리만 하게 되고,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그냥 여기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독자(안티 활동가)들이 짐작하여 멀리 내다 보면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제삼자 2011-09-01 (목) 02:03
[예수와 그 형제들의 강간질]-홍수의 이유
 
 
노아 때의 홍수는,
여호와의 아들들(예수와 그 형제)이 사람의 딸들을 마구잡이로 겁탈을 자행한 죄 값으로 내려진 벌이라고 한다.
못된 짓은 여호와의 집안이 자행하고, 벌은 사람과 모든 동물들이 떼 죽음으로 갚아진 사건이었다.
 
우선, 바이블 내용을 보기로 하자.
 
[사람이 땅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그들에게 딸들이 많이 태어났다.
여호와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죽어야 할 육체이므로 내 영이 영영 사람에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그들에게 120년 동안의 여유를 주겠다.”]
 
(창세기 6; 1~3)
 
 
 
여호와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겁탈하고 있는 장면이다.
 
예수가 여호와의 독생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여호와의 아들은 여러 명이 있다고 되어 있다.
 
신학자라는 사람들은 위의 바이블 내용을 다르게 해석해야 된다면서, 궤변을 늘어 놓는다.
그런 식으로 바이블 내용을 뒤집어 엎으려면, 아예 바이블을 통째로 갈아 엎어야 옳다.
 
바이블의 모순, 궤변, 허구성...여기에 빠지면 껍데기만 사람일 뿐이다.
제삼자 2011-11-16 (수) 21:52
[양가죽을 쓴 늑대 이야기]


[(예수 왈)
"거짓 선지자(목사와 쟁이)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늑대)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 7;15~20)


(1) 선지자란 여호와(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요새 말로 하면 목사(신부)와 모든 예수쟁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2) 그런데, 이 선지자들 중에는 양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들이 있으므로 이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3) 양가죽을 쓴 늑대는 노략질을 일삼는다고 한다.
양가죽을 쓴 늑대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종류의 열매를 맺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4) 오늘날의 한국 예수교는 무슨 열매를 맺어 놓았다고 보이는가? 
수 백 년 전의 제국주의로 온 세상의 식민 쟁탈 전쟁을 등에 업고 날뛰던 예수쟁이들은 무슨 열매를 맺어 놓았는가?

그러면, 유럽 중세 시대의 예수쟁이들은 어떤가?
아니면, 고대 중동 지방의 여호와쟁이들은 무슨 짓을 했는가?

예수쟁이들은 남북미대륙에서는 무슨 짓을 했는가? 노략질과 살인질 밖에 더 했는가? 이것이 양가죽을 쓰고 늑대 짓을 해 낸 결과가 아니고 뭔가?

(5) 예수와 여호와의 언행(바이블 내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인가? 

(6) 예수쟁이들의 역사와 현실을 아름다운 열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바이블 내용(여호와=예수)을 아름다운 열매라고 할 수 있겠는가?

(7) 따라서 예수쟁이들을 모두 다 도끼로 찍어 내어 불태워야 할 것이다. 예수가 그렇다고 분명히 말했다.
예수쟁이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그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뜨거운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져야 될 것이다.

(8) 바이블 내용이 허구이더라도 예수쟁이들의 열매가 아름다우면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바이블의 내용은 아름다운데 예수쟁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앞으로의 기회를 생각해서 참고 보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9) 예수교가 모두 썩은 것이 아니라 '일부 사이비'들이 어쩌고 저쩌고 변명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게 다 못돼 먹은 잡소리이다.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예수
    그렇다. 절대로 아름다운 열매일 수가 없는 <바이블 내용> <여호와> <예수>
    <목사=신부> 그리고 <모든 예수쟁이들>은 도끼에 찍혀 불구덩이에 쳐 박혀야
    될 것이다.--예수의 말이다. 아멘.
제삼자 2011-12-22 (목) 15:46
[예수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여호와(예수)의 말이 담겨 있다는 바이블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면, 대개 축복(祝福)의 말과 저주(詛呪)의 말로 나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분석 종합하면, 바이블에는 저주의 말만 있을 뿐, 축복의 말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된다.
 
  축복은 반드시 어떤 트집을 잡아서라도 저주로 바뀌며, 한 번 바뀐 저주는 다시 축복으로 환원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바이블에는 저주만 들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바이블에는 축복은 없고 저주만 들어 있을까? 또, 주어졌던 축복들을 모두 저주로 바꾸어 놓고, 다시는 축복 쪽으로 되돌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福)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祝福)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詛呪)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세기 12; 2~3)

  여호와가 히브리(족속)에게 처음으로 축복을 약속하는 장면이다. 여호와는 전지 전능하며, 사랑이 많은 불변의 신이라 한다.
 따라서, 위의 약속은 영원히 불변이어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머지 않아 저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축복 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나 여호와 너의 신(神)은 질투하는 신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1,000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 5~6)

  여호와의 10 계명 중 하나이다.
 사람이 꼭 지켜야 될 600 여 가지나 되는 율법 중에서도 제1조에 해당하는 법이므로 법 중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율법에 나타난 여호와의 약속은 영원히 불변일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인류의 조상(?) 아담이 저지른 죄(?) 값은 3~4 대는 고사하고 지금까지 원죄라는 것으로 연좌되고 있다.
 모든 인종의 조상이라는 노아는 여호와로부터 단 한 번도 책망을 듣지 않은 의인(義人)이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도 1,000 대의 축복은커녕 노아의 아들, <함>은 당대에 저주를 받는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만큼 여호와를 잘 받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자손은 1,000 대에 이르도록 복락을 누려야 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저주로 시작되고, 아브라함의 증손자 <에서>도 저주로 출발한다.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 세운 히브리 왕국은 아예 멸망해서 없어졌다.
  문제는 죄(罪)를 3~4 대까지, 복(福)을 1,000 대까지 갚겠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모순(矛盾) 관계라는 점이다. 
 
  여호와의 말을 빌리면, 히브리 족속 중 가장 큰 악인(惡人)은 아합왕일 것이다.
 그러면, 아합왕은 3~4 대까지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나, 아합왕은 아브라함으로부터 1,000 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합왕은 아직 복을 받아야 될 대상이다.
 여호와의 약속대로라면, 아합은 축복과 저주가 겹처진 사람이다. 이것은 틀림 없는 모순 관계이다.
  결과적으로, 여호와의 3~4 대 또는 1,000 대는 그림자도 없이 없어지고, 인간의 모든 것은 즉시 즉시 당대에 저주를 받고 불행의 삶을 걷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이 여호와의 변덕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는 일은 불가능 그 자체이다.
 바이블 내용도 그러하고, 히브리와 예수교 역사도 그러하다.

  [...여호와가 또 네(다윗왕)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位)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왕)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位)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사무엘하 8; 11~16)

  여호와가 다윗왕에게 축복하여 약속하는 장면이다.
 히브리 왕국과 다윗의 자손에 의한 왕위는 영원히 보전시켜 주겠다는 여호와의 축복이다.
  다윗은 히브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군(名君)이다.
 
 여호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자이기도 하다.
 다윗은 노아, 아브라함 등, 여호와로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직계 자손이요, 스스로도 여호와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자이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의 나라 히브리 왕국은 주위의 강대국들의 속국(屬國) 노릇을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고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졌다.
 전설로 꾸며진 전성 시대도 여타 이방 민족의 나라에 비하면 하찮은 토후국(土侯國)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없어진 것이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히브리 왕국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恒常)하여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으며, 모든 형태도 반드시 변하여 없어지게 되어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을 인간의 감각으로 보면 불행의 조건 아닌 것이 없다.
 (자연 현상 또는 질서는 행 불행을 초월한 것이지만) 
 
  여호와(예수)의 축복 내용들은 인간의 터무니 없는 욕망과 망상을 채워 주겠다는 것들이다.
 <천당>, <영생 복락>, <절대 불변>, <세계 최고> 등등, 듣기 좋은 말들이 여호와의 축복 내용이다.
 그러나, 이 축복들은 마침내 인간의 감각으로는 반드시 불행한 결과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절대 불변하여 항상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허무맹랑한 축복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면, 여호와(예수)의 약속 또는 전지 전능이 허구(虛構)로 드러나게 된다.
 이에 착안 된 것이 여호와의 저주(詛呪)이다.
 여호와는 자기가 말해 놓은 축복들을 무슨 트집을 잡든 저주로 바꾸어 놓는다.
 
 또, 저주로 바뀐 것이 다시 축복으로 환원되는 경우는 없다.
 앞에서 필자가 지적했듯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의 감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행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무엇이든 저주(불행) 쪽으로 예언을 해 놓으면, 그 예언은 백발 백중 맞아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모든 것이 저주로 되어 있고, 축복했다가도 무슨 트집을 붙여 이내 저주로 바꾸어 놓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 즉, 바이블에는 오직 저주만 담겨 있다. 

  여호와(예수교)는 우매한 인간을 홀리기 위하여 모든 것을 축복(祝福)의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저주(詛呪)로 끝이 난다. 어쨌든, 신(神)의 축복과 저주는 예수교의 무기로서 인간의 코를 뚫어 끌고 다니며 착취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수에 관한 것도 여호와의 축복에 속하는 문제이다.
 예수가 재림하면 말세의 심판과 더불어 예수교인들은 면류관을 쓰고 천당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우주 질서에 영원 불변은 없는 것이므로 천당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재림하게 되면 여호와(예소)의 그 황당한 약속(축복)은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여호와(예수)의 모든 것이 허구(虛構)로 들통나지 않도록 숨겨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가 영원히 재림하지 않는 것이다.
 축복을 저주로 바꾸지 않고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를 재림하지 않게 하는 방법 뿐이다.
 
 예수 이전의 구약(舊約) 시대는 <인간이 범죄했다>를 뒤집어 씌워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여호와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 로 속임수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이블을 새로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의 재림(축복)이 실현되면 예수교로서는 큰 낭패가 된다.
 예수교는 그 날로 문을 닫아야 될 것이다.
 여호와(예수)의 재주로는 약속된 천당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의 재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야, 여호와(예수)의 허구(虛構=축복)가 들통날 염려도 적어지고, 예수교의 돈벌이 사업은 좀 더 연장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영원히 재림하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교의 허구(虛構)가 들통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제삼자 2012-03-01 (목) 14:38
[그 사람의 인격은 어느 것일까]


예수교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예수교란 <교회당(집)>을 지칭하는 말일까? 그런가?
예수교란 <여호와(예수)>를 지칭하는 말일까?
아니면, 예수교란 <바이블(내용)>을 가리키는 말인가?

교회당은 예수쟁이가 지어 놓은 건물이다. 예수교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 지은 것도 있다. 어쨌든, 교회당은 사람의 손이 지어 놓은 것이다.
예수교의 신이라는 여호와(예수)도 예수쟁이(사람)가 만들어 놓고 받드는 귀신이다.
바이블(예수교의 교리)이란 것도 어떤 예수쟁이(사람)가 써 놓은 책이다.

예수교의 교리를 풀어서 가르치는 자(신학자, 목사, 신부)도 사람이요, 그 가르침을 받는 자도 사람이다.
예수교 속에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한 가지도 빠짐 없이 100 %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교의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란 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교>란 바로 사람 즉 <예수쟁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교와 예수쟁이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예수교가 바로 예수쟁이요 예수쟁이가 바로 예수교이다.

여기에서 잠시 예수교 속에서 횡행하는 멋진(?)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있다.
목사(신부)를 비롯하여 예수쟁이라면 누구나 즐겨 쓰는 격언이다.

"사람(예수쟁이)을 보지 말고 하나님(예수=여호와)만 바라 보라."
"예수쟁이도 사람인지라 잘못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교(바이블)의 근본에는 잘못이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불완전하고 악한 인간을 보고서 그것을 마치 예수교인 것처럼 비판하지 말고, 완전하고 선한 예수(여호와)를 바라보고서 그것을 예수교의 진짜 모습이라고 보아 달라는 말이다.

어떤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예수교의 모든 것이 100 %사람(예수쟁이) 뿐인데, 그런 예수교 속에서 사람을 보지 말라는 말이 되는 말일까??
예수교의 신(예수=여호와)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귀신이거늘, 그것만을 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아니, 그보다도 예수교 속에서 예수(여호와)라는 귀신을 본(발견한) 사람이 있던가?
있지도 않은 귀신을 들먹이며, "사람을 보지 말고 귀신만 보라"니, 이렇게 황당한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지구 위의 어느 교회를 불문하고 분란이 없는 교회가 없으며,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교회가 없다.
예수교 역사가 통째로 피비린내로 진동하고 있으며, 시궁창 아닌 것이 없다.
이런 더러운 모습을 가리고 숨기기 위해서 생겨난 말이 바로 "사람을 보지 말고 귀신만 보라"는 궤변이었던 것이다. 

예수쟁이(사람)는 예수교의 모든 것이다.
예수쟁이 자체가 썩어져 있고 잘못되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교가 통째로 썩은 시궁창이란 말과 다름 아니다.

따라서, 예수교 속에서 횡행하고 있는
"사람(예수쟁이)을 보지 말고 하나님(예수=여호와)만 보고 따르라."는 말은 궤변일 뿐이다. 

정확하고 쉽게 말해서,
예수교 속에는 신이란 것은 없고, 더럽고 잔인할 수밖에 없는 사람(예수쟁이)만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예수쟁이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럽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속물(俗物)들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지나쳤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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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수교 이야기와 비슷한 말이 일반 사회에도 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가 그것이다.
<죄>란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언행의 결과이다. 사람의 언행이 없다면 죄라는 것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죄가 사람이요, 사람이 죄란 말이다. 죄와 사람은 한 덩어리로서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가 성립될 수 있을까?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그렇거든 글(책)을 많이 써라."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라고 한다.

그럴다. 인류 역사를 살펴 보면, 유명한 인물은 모두가 글(책)을 남겨 놓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책이라도 그 속에는 그럴 듯하고, 멋진 말이 몇 개는 들어 있게 마련이다.
그 그럴 듯하고 멋진 말은 결국 그 책을 써 놓은 사람의 인격이 되어 오래 도록 점점 더 유명해지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몇 몇 학자들이 해 놓은 말 중에는 과학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업적이 많다.
그러나, 그 업적조차도 그 학자(사람)의 인격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거늘, 비과학적이고도 비논리적인 내용을 멋지게 포장시켜 놓은 말(책)을 가지고 그 어떤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고,
공부를 잘 하고,
운동을 잘 하고,
노래를 잘 부르고,
그림을 잘 그리고,
종교를 가지고,
여호와(예수)만 바라보고, .....
아무리 강조해 봐도 그 속에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여호와=예수)만 바라 보자."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하나님(여호와=예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당신은 하나님(여호와=예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다."등등등...
모두가 사람을 홀리는 엉터리 신기루들이다.

예수교에서 그 뭐라더라! 복음성가라던가? 그 복음성가(말, 글, 책)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있었다. 많은 예수쟁이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당사자는 갖가지로 잡놈(?) 행각을 벌여 결국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복음성가(말, 글, 책)는 세상에 오래 도록 남아 있게 되고, 그것을 써 놓은 사람의 잡놈 행각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희미해지게 되고, 그 노래 내용만 멋진 진리가 되어 많은 사람을 오래도록 홀리게 될 것이다.

바이블(예수교의 모든 것)이란 것에도 그 속에 20~30 가지 쯤 그럴싸하고 멋진 말이 들어 있다.
그것을 써 놓은 자들이나, 그것을 해설하는 자들이나, 그것을 읽는 자들이나, 모두 모두 잡놈 행각을 벌이고 있어도, 바이블(예수교)은 훌륭한 것으로 인식되게 된다.
이것이 예수교의 실체이다.

어쨌든, 책을 써 놓으면 유명해지는 것이다. 물론 내용이 훌륭하면 더욱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책과 그 책을 쓴 사람의 인격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더욱 무서운 결과는, 그 훌륭해 보이는 책도 자세히 훑어 보면 거의 모두가 엉터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무서운 결과, 엉터리 내용, 사람을 홀리는 유명한 책, 그 모든 것의 결정체가 바로 예수교의 경전 <바이블>이다. 아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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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예수)의 만행(蠻行)질]다음의 말은 여호와(예수)가 전지전능한 신으로서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정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성…
제삼자 12/07/16 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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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主客顚倒)] 주객전도 :주인과 손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뜻으로, 사물의 경중(輕重), 선후(先後), 완급(緩急) 따위가 서로 뒤바뀜을 이르는 말. (1…
제삼자 12/07/13 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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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名譽)]명예(名譽)란 무엇일까? 국어 사전에서 찾아 보자.명예--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세상에서는 이 명예를 획득하려고 혈안이 …
제삼자 12/05/26 6747
698
[예수교의 더러운 세뇌 행각]세뇌(洗腦)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洗)--씻을 세,  (腦)--뇌 뇌, 그러니까 단순하게 한자 풀이를 하면, 뇌를 깨끗하…
제삼자 12/05/22 7281
697
[일생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1) 착한 일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과 (2) 신을 찾아내어 그 신의 존재…
제삼자 12/03/16 6864
696
[교회에다 돈을 얼마나 바쳐야 되는 걸까?]   예수쟁이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교회에다 돈을 얼마나 바쳐야 되는 걸까? "교회에다 돈을 바쳐야 된다.…
제삼자 11/05/23 10827
695
[설득 없이 무조건 돌로 쳐 죽여라] 일단, 바이블부터 보자.[(1) 네 동복 형제나, (2) 네 자녀나, (3) 네 품의 아내나, (4)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
제삼자 11/05/23 7801
694
[용서될 수 없는 직무 유기 죄]   몹시 아픈 환자가 병원을 찾아왔다. 그런데 그 행색을 보아하니 단 돈 10 원 한 장도 없는 거지 같아 보…
제삼자 11/05/23 5315
693
[여호와(예수)는 인간에게 시련도 준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
제삼자 11/05/23 5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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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6 월 16 일 아침에] 2010 년 6 월 16 일,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부산 역에 낯선 기차 한 대가 도착했다.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 봤…
제삼자 11/05/23 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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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貪), 진(瞋), 치(痴)=삼독(三毒)]불교의 가르침에 삼독(三毒)이란 것이 있다. 탐(貪), 진(瞋), 치(痴)가 바로 그것이다.탐(貪)은 자기 마음에 맞아, 가지고 …
제삼자 11/05/23 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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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군대 즉 철병거에 밀리는 여호와][...여호와께서 유다(이스라엘 지파)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山地)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
제삼자 11/05/23 4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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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 살리기] 예수교의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예수 등이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질을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여기서는 엘리사가 죽…
제삼자 11/05/23 4521
688
[거대한 재산가(재벌)의 사업 계획서]수 천 억(億) 또는 수 천 조(兆)의 재산가(재벌)가 있다고 하자. 1 전(錢) 내외의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사업…
제삼자 11/05/23 4291
687
[신학교(神學校]세상에는 누구에게나 선배 또는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떤 분야에도 선배와 스승은 있다. 젊은이들은 이들 선배와…
제삼자 11/05/23 4213
686
[예수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커다란 착각]1학년, 첫 시험(중간 고사) 때의 일이다. '경제학 개론' 시험은 주어진 5문제 중 3개를 택하여 논하는 주관식 시험이…
제삼자 11/05/23 4383
685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농사를 짓되, 수확을 하지 않는 농업인, 직장을 가졌으되, 봉급을 받지 않는 회사원, 회사를 경영하되, 영리를 추…
제삼자 11/05/23 5774
684
[안전사고 및 천재지변은 여호와가 내리는 벌] 요 몇 년 사이에 동남아, 중국, 아이티, 칠레, 일본 등지에서 초대형 지진과 해일로 어마어마한 인명과 재산…
제삼자 11/05/23 3619
683
[바이블을 제멋대로 해석하면 지옥간다]     [이스라엘(예수쟁이들)아, 이제 내(여호와)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規例)와 법도(法度)를 듣고 …
제삼자 11/05/23 5211
682
[순서가 모두 거꾸로 되어 있는 예수교]     [(예수 가라사대)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
제삼자 11/05/23 5064
681
[예수는 화폐(貨幣) 위조범]예수는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진(기적질로) 돈으로 세금을 낸 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위조 화폐로 세금을 내고 있다. 바이블을 …
제삼자 11/05/23 5462
680
[사람을 말뚝 박아 죽이기] 다음 이야기는 여호와의 은혜로 강력한 힘이 생긴 한 여인이 적장(남자)을 말뚝 박아 죽이는 통괘한 장면이다. 여호와(예수)의 은혜…
제삼자 11/05/23 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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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불(假拂) 된 예수교의 축복] 이 우주에서 입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을까? 입으로는 불가능이 없을 것이다. "주(主=예수)여, 믿습니다."도 할 수 있으며, 하…
제삼자 11/05/23 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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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만이 40 년 동안 행군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發行)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幼兒) 외에 보행하는 장정(壯丁)이 60 만 가량이요, 중…
제삼자 11/05/23 4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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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의 조상이 시범을 보여준 기도문]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인이 되어 나오게 하시며…
제삼자 11/05/23 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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