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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톨릭등 모두 포함)라는 종교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포인트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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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921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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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17[인간에게 시련을 주는 여호와(예수)]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11-05-23 (월) 15:07 조회 : 5876

[여호와(예수)는 인간에게 시련도 준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시련)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 10 ;13)

여호와는 미쁘사 즉, 신의가 있으셔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시험(시련)만을 내리신다고 한다. 여호와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어렵고 힘든 시험(시련)은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시험(시련)을 내릴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놓으셔서, 사람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사람은 여호와의 은혜에 고맙다고 해야 할까?

(1)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든, 시련이란 것을 인간에게 덮어 씌우는 여호와의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원한 사람은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동원(창조?)시켜 놓고서 그게 뭣하는 짓일까?
신(神)의 간여가 없는 자연 질서 속에서 적자생존을 위하여 시련을 당하고 경쟁도 하는 것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신(神)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해 놓은 세상에서 자기 의지 없이 동원된 인간이 크든 작든 시련(시험)을 당해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 불쌍하고 무능한 인간(모든 생명체 포함)에 대한 여호와의 잔인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악마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호와는 하루 속히 자신이 허구(虛構)임을 만천하에 밝혀 자신이 뒤집어 쓴 악마적 누명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2) 인간에게 시련(시험)을 내릴 때,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신다는 여호와, 이런 궤변도 있을 수 있는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남겨 놓고 암에 걸려 갖은 고생을 하다가 죽어가는 시련도 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한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던 남편 또는 아버지가 교통 사고를 만나 시체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남은 유가족이 겪는 고통과 슬픔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인가?
젊은 나이에 질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그 죽은 사람에게 여호와(예수)가 마련해 준 시련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것인가? 죽은 뒤에 천국의 복락을 준다는 말인가?
크든 작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주어진 모든 시련을 극복한 셈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마련해 준 피할 수 있는 길인가? (이런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자에게는 없다.)

어떤 주부가 콩을 가마솥에 넣고 볶고 있을 때, 콩들은 이유 불문 꼼짝 못하고 볶아지게 되어 있다. 콩들이 그 주부의 뜻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방법)은 없다. 크든 작든, 콩이 시련(볶아지기)을 극복하는 길은 그냥 볶아지는 것 뿐이다. 마찬 가지로, 여호와(예수)로부터 주어진 시련을 벗어난 사람은 없다. 최종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각종 시련으로 시달리다가 종착역은 죽음으로 통하는 길 뿐이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느니, 시련을 줄 때에 피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준다느니 따위는 신(神)의 이름을 빙자한 궤변이다. 신(神)의 이름으로 손쉽게 남의 재물을 갈취하여 살아가는 사기꾼들이, 인간의 수고와 고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혹세무민하기 위하여 꾸며낸 궤변이다.

 ** 참고; 위의 바이블 구절과 비교하며 다음 글을 음미해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예수)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 11 ; 28~30)

원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시련으로 허덕이는 인간에게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멋진 말이다. 사기꾼의 말은 이렇게 달콤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수고, 자기의 무거운 짐, 자기의 멍에를 가볍게 해 주거나 벗겨줄 자(신)는 없는 것이다. 예수교의 모든 것은 혹세무민을 위한 달콤한 미끼일 뿐이다. 여기에 한 번 말려든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긴 얼빠진 종자가 되고 만다.
좀 냉혹한 말이지만, 자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사람은 자신 뿐이다. 여호와(예수) 아니라 그 할애비가 나타나더라도,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대신 걸머져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는 사실과 함께 우주의 진리(眞理)이다. 이 엄연한 진리를 엉뚱한 곳에서 찾으려고 시도하는 허욕이 바로 시련이요 불행이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11-06-03 (금) 19:31
믿음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싶지 않다는것을 의미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성경은 수많은 익명의 저자,편집자,필사자 등이 9세기에 걸쳐 지리멸렬한 문서를 혼란스럽게 엮고 수정하고 번역하고 왜곡하고 '개정한' 선집에서 기대할 만한 바로 그런 양상을 보여준다 - 리처드 도킨스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신교도는 근본주의자들 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또한 명백한 천치들이다 - 헨리 루이 멩켄

  지적으로 저명한 인물들 중 대다수는 기독교를 불신하지만, 그들은 대중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 혹시 수입원을 잃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 버트런드 러셀

  지옥을 만들어 내는 존재를 생각해 보라. 인류의 대다수가 끔찍스러운 영겁의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것을 미리 분명히 알면서, 그렇게 할 의도를 가지고서 인류를 창조한 존재를 생각해 보라. 상상이 가는가 ? - 존 스튜어트 밀

  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발 눈곱만큼이라도 수고를 들여서 자기들이 반대하는 내용의 초보적인 원리만이라도 배웠으면 좋겠다 - 리처드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에서

  신의 전능함을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해 악마도 신이 만든것이라고 보고 있지. 그러면서도 신은 자기가 만든 악마의 행위에는 책임이 없다는것인가 ? - 아놀드 토인비

  신앙이란 증거가 없어도 -심지어는 반대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말한다 - 리처드 도킨스

  종교를 비판한다는 것은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 등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는 일이다 - 필립 풀먼

  '구원받기 위해서 신을 믿어야 한다' 는 이 그릇된 교리는 잔인한 불관용의 원리이다 - 장 자크 루소

  종교는 늘 그랫듯이 피에 든 독이다 - 살만 루시디

  종교를 만들고, 지탱하고, 확장하는 세 가지: 망상, 무지, 정신병 - T.A Dahar

  진화론 자체는 더 이상 현대적 사상을 지닌 저자들을 위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 만큼이나 명백한 사실이다 - 에른스트 마이어

  다양한 (기독교) 종파의 성직자들은, 과학의 발전을 한낮에 등장한 마녀처럼 두려워하며, 그들이 일종의 사기로 먹고산다고 선언하는, 그 치명적인 전령을 노려본다 - 토머스 제퍼슨

  종교는 체계적인 미신일뿐이다 - evolution (무신론사이트 회원)

  나는 스위스에서 아들에게 기독교를 가르치지 않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 까닭은 이 조잡한 가르침에 만족해 버리면, 이성이 깃들 나이에 이르렀을 때, 보다 나은 가르침을 경멸하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 장자크 루소

  종교는 붕괴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물귀신처럼 윤리마저 끌어안고 쓰러지려 한다. 따라서 우리는 도덕을 종교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 강민형

  신은 불가사의를 설명하기 위해,이해되지 않는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게 된다면 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것이며, 더이상 신은 필요없다 - 리처드 파인만

제삼자 2011-07-29 (금) 00:16
[타(他)와 공존할 수 없는 예수교]-예수교의 지엄한 명령 

["너희(예수쟁이)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혼인하지 말라).
의(義)와 불법(不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예수)와 벨리알(마귀)이 어찌 조화(調和)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相關)하며,
신의 신전(神殿)과 우상이 어찌 일치(一致)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신(神=여호와, 예수)의 성전(聖殿)이라.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신(神)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14~16)


신약(新約=바이블)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하고,
그것을 거의 절반이나 쓴 예수의 사도(使徒)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뱉어 놓은 말이다.

우리가 보는 신약은 그 배열 순서대로 씌어진 것이 아니라, 바울의 신앙 방법부터 씌어진 것이다.
다시말해서, 예수교는 바울의 주장부터 태어나고, 다음에 예수의 출생과 각종 행적이 꾸며졌다는 말이다.

예수쟁이는 비예수교인과 혼인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예수쟁이는
1. 의(義),
2. 빛,
3. 구세주,
4. 믿는 자,
5. 성전(聖殿)이며,

비예수교인은
1. 불법(不法),
2. 어두움,
3. 마귀,
4. 믿지 않는 자,
5. 우상(偶像)이어서,
 
예수쟁이와 비예수교인은 
함께 할 수 없으며,
사귈 수도 없고,
조화(調和)를 이룰 수도 없고,
일치(一致)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쟁이는 비예수교인과 상관(相關)해서도 안되고, 혼인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예수)는 예수쟁이의 신(神)이 되고, 예수쟁이는 그 신의 백성이 되는 것만으로 다 된 것이라 한다.

배타, 독선, 고집 불통, 편협, 비윤리 등등으로 똘똘 뭉쳐진 정신 병자 말고 무엇이 만들어지겠는가?

`우주 만물이 공존해야 된다`는 대명제 앞에서, 예수교는 스스로 자격을 포기한 셈이다.

예수교의 눈웃음에 속아서는 큰 일난다.
예수교는 당연히 격리 처분되어야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참고;
 
(1) 예수쟁이는 비 예수교인과 혼인하지 말라.
(2) 예수쟁이는 비 예수교인이 생산한 물건(의식주)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
(3) 예수쟁이는 비 예수교인과 이웃(친구)하여 살아서는 안 된다.
(4) 예수쟁이는 비 예수교인이 만들어 놓은 길로 다녀서는 안 된다. (내가 너무했나?)
 .
 .
 
(n) .............................................
제삼자 2011-07-30 (토) 17:51
[사람은 포악(暴惡)해야 된다. 하모!]
 

(1)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야 된다.
    왜냐 하면, 전지전능하지 못하면 천지를 창조하고, 그것을 임의로 다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는 전지전능해야만 되는 것이다.

(2) 예수는 죄가 없어야 된다.
    왜냐 하면,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죄인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인류를 위해서 예수에게 죄는 없으면서 은혜가 많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3) 인간은 포악(暴惡=사납고 악함)해야 된다.
    왜냐 하면, 여호와(예수 또는 예수쟁이)의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고, 예수는 은혜를 베풀어서 인간을 구원해야 되는데,
    만약, 인간이 포악해지지 않는다면 여호와(예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써 먹을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반드시 포악해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여호와의 사랑, 예수의 은혜 그리고 인간의 포악이 한 통 속에 어울어져서
    여호와(예수)에게는 할 일과 영광이 생산되고, 인간에게는 행복한 노비 생활이 펼쳐지는 것이다.

(4) 서울에 거주하는 예수쟁이들은 서대문에서 동대문 쪽으로 걸어가야만 된다.
    왜냐 하면, 남해에서 꽁치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해에서 꽁치가 잡히지 않게 되면 숙정문에서 숭례문 쪽으로 걸어가면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그러게 말이야. 나도 몰라.
 
(5) 한반도는 반드시 통일되어만 한다.
     왜냐 하면,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된 뒤에는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도 무슨 말이냐고?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 보도록....
제삼자 2011-08-05 (금) 05:08
[악마의 시]

어떤 분이 바이블의 시편(詩篇)에 실려 있는 시(詩)들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했다.
몇 년 전, 조독마에서도 이 시를 올려 자랑하던 예수교인이 있었다.
그 때도 필자는 답글을 올렸었다.

필자는 바이블의 시편을 악마(惡魔)의 시(詩)라고 보고 있다.
세상에 나타난 어느 시에 상대를 저주하고 미워하는 그런 시가 있던가?
시가 무엇인가? 시를 짓는 시간 또는 음미하는 동안의 인간의 마음보다 더 아름다운
때가 있을까?

바이블(여호와의 말씀)의 시는 어떤 것일까?
시편에 있는 시는 모두 150 편이다. 그 중에 제 1편과 제 23편은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예수교는 말하고 있다.
오늘은 제 23편을 음미해 보기로 한다.


시편 제 23편
히브리 왕국 최고 최대의 명군이요, 여호와가 가장 사랑한 다윗이 지은 시라고 한다.
교회에 발을 들여 놓고 1년 이내면 누구나 알게 되는 명시 중의 명시이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草場)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義)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主)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5)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安慰)하시나이다.

(6)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床)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7)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감상;

(1)~(5)까지는 그냥 독자들 몫으로 둔다.

사막 벌판에서 노략질 전투로 그 날 그 날을 마음 조리며 살아가는 모습,
그들의 무기였던 지팡이와 막대기의 대입,
푸른 초장과 물 가를 적당히 배합하여 멋지게 그려낸 시이다.

여기의 의(義)는, 안중근 의사는 한국 쪽에서 의요,
이등박문은 일본 쪽에서 의임과 같다. 신의 의라고 할 수가 없다.

(6) 신(神)이란 작자가 원수(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편 앞에다 상을 배설하고,
자기 편 사람(예수쟁이)들의 머리에다 기름을 발랐다고 한다.

즉, 자기 편 사람들을 선별하여 택하고, 다른 편은 버렸다는 뜻이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쓰는 `God damn !`과 같다. 이를 본 상대(원수=적)의 마음은 어떨까?

세상의 어느 시 속에 상대를 저주하고, 편 가르고, 멸망하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겨 있던가?

(7) 그렇게 선하시고 인자하신 여호와의 집(천당?)에 영원히 거하겠단다.
예수쟁이들은 좋겠다. 
제삼자 2011-08-13 (토) 18:39
[미련한 종교의 미련 떨기와 다른 종교의 멋진 사색]


**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는 전지전능해서 그의 모든 것은 영원 불변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예수)는 자기가 해 놓은 말에 대해서 후회와 한탄을 식은 죽 먹듯 뒤집고 또 뒤집기를 반복한다.
    자연 질서를 전혀 아는 바 없는 미개인이 떠들어 놓은 말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렷다.
    또, 예수교의 발자취(유적) 중에 폐허가 되지 않은 모습도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신(여호와)께서는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뜻이 불변함을 명확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증하셨습니다.] (히브리서 6; 17)-우리말성경

[그래서 신(여호와)께서는,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뜻이 불변함을 더욱 밝게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보증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6; 17)-표준새번역

["내(예수)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世代)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말세)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예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 24;34~35)-개역



** 예수교와는 달리 불교의 입장(교리)에서는 꽤나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불교의 기준이 되는 교리에는 삼법인(三法印)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
이것을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하는데, 불교의 기준이 되는 3가지의 법(진리)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법인(法印)이란 <기준> <표식> <특징> <확인>을 의미하는 뜻이라고 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함.
제법무아(諸法無我)-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인연으로 생겼으며, 변하지 않는 참다운 자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일체개고(一切皆苦)-사람이 무상(無常)함과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에 집착하여 온갖 고통에 빠져 있음을 이르는 말.

(잡아함경, 금강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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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교의 허구(虛構)가 들통나지 않으려면]-그 많은 거짓말들을 어떻게 모두 감싸고 돌지는 모르지만.

 
 
  여호와(예수)의 말이 담겨 있다는 바이블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면, 대개 축복(祝福)의 말과 저주(詛呪)의 말로 나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분석 종합하면, 바이블에는 저주의 말만 있을 뿐, 축복의 말은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된다.
 
  축복은 반드시 어떤 트집을 잡아서라도 저주로 바뀌며, 한 번 바뀐 저주는 다시 축복으로 환원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바이블에는 저주만 들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바이블에는 축복은 없고 저주만 들어 있을까? 또, 주어졌던 축복들을 모두 저주로 바꾸어 놓고, 다시는 축복 쪽으로 되돌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福)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祝福)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詛呪)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세기 12; 2~3)

  여호와가 히브리(족속)에게 처음으로 축복을 약속하는 장면이다. 여호와는 전지 전능하며, 사랑이 많은 불변의 신이라 한다.
 따라서, 위의 약속은 영원히 불변이어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머지 않아 저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축복 쪽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나 여호와 너의 신(神)은 질투하는 신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1,000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 5~6)

  여호와의 10 계명 중 하나이다.
 사람이 꼭 지켜야 될 600 여 가지나 되는 율법 중에서도 제1조에 해당하는 법이므로 법 중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의 율법에 나타난 여호와의 약속은 영원히 불변일 것이다.

 
  그런데, 최초의 인류의 조상(?) 아담이 저지른 죄(?) 값은 3~4 대는 고사하고 지금까지 원죄라는 것으로 연좌되고 있다.
 모든 인종의 조상이라는 노아는 여호와로부터 단 한 번도 책망을 듣지 않은 의인(義人)이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도 1,000 대의 축복은커녕 노아의 아들, <함>은 당대에 저주를 받는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만큼 여호와를 잘 받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자손은 1,000 대에 이르도록 복락을 누려야 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이 저주로 시작되고, 아브라함의 증손자 <에서>도 저주로 출발한다.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 세운 히브리 왕국은 아예 멸망해서 없어졌다.
  문제는 죄(罪)를 3~4 대까지, 복(福)을 1,000 대까지 갚겠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모순(矛盾) 관계라는 점이다.

 
  여호와의 말을 빌리면, 히브리 족속 중 가장 큰 악인(惡人)은 아합왕일 것이다.
 그러면, 아합왕은 3~4 대까지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나, 아합왕은 아브라함으로부터 1,000 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합왕은 아직 복을 받아야 될 대상이다.
 여호와의 약속대로라면, 아합은 축복과 저주가 겹처진 사람이다. 이것은 틀림 없는 모순 관계이다.
  결과적으로, 여호와의 3~4 대 또는 1,000 대는 그림자도 없이 없어지고, 인간의 모든 것은 즉시 즉시 당대에 저주를 받고 불행의 삶을 걷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이 여호와의 변덕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는 일은 불가능 그 자체이다.
 바이블 내용도 그러하고, 히브리와 예수교 역사도 그러하다.

  [...여호와가 또 네(다윗왕)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位)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왕)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位)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사무엘하 8; 11~16)

  여호와가 다윗왕에게 축복하여 약속하는 장면이다.
 히브리 왕국과 다윗의 자손에 의한 왕위는 영원히 보전시켜 주겠다는 여호와의 축복이다.
  다윗은 히브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군(名君)이다.
 
 여호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자이기도 하다.
 다윗은 노아, 아브라함 등, 여호와로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의 직계 자손이요, 스스로도 여호와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자이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의 나라 히브리 왕국은 주위의 강대국들의 속국(屬國) 노릇을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고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졌다.
 전설로 꾸며진 전성 시대도 여타 이방 민족의 나라에 비하면 하찮은 토후국(土侯國)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없어진 것이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히브리 왕국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恒常)하여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으며, 모든 형태도 반드시 변하여 없어지게 되어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을 인간의 감각으로 보면 불행의 조건 아닌 것이 없다.
 (자연 현상 또는 질서는 행 불행을 초월한 것이지만)

 
  여호와(예수)의 축복 내용들은 인간의 터무니 없는 욕망과 망상을 채워 주겠다는 것들이다.
 <천당>, <영생 복락>, <절대 불변>, <세계 최고> 등등, 듣기 좋은 말들이 여호와의 축복 내용이다.
 그러나, 이 축복들은 마침내 인간의 감각으로는 반드시 불행한 결과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절대 불변하여 항상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허무맹랑한 축복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면, 여호와(예수)의 약속 또는 전지 전능이 허구(虛構)로 드러나게 된다.
 이에 착안 된 것이 여호와의 저주(詛呪)이다.
 여호와는 자기가 말해 놓은 축복들을 무슨 트집을 잡든 저주로 바꾸어 놓는다.
 
 또, 저주로 바뀐 것이 다시 축복으로 환원되는 경우는 없다.
 앞에서 필자가 지적했듯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의 감각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행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무엇이든 저주(불행) 쪽으로 예언을 해 놓으면, 그 예언은 백발 백중 맞아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모든 것이 저주로 되어 있고, 축복했다가도 무슨 트집을 붙여 이내 저주로 바꾸어 놓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 즉, 바이블에는 오직 저주만 담겨 있다.

  여호와(예수교)는 우매한 인간을 홀리기 위하여 모든 것을 축복(祝福)의 말로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저주(詛呪)로 끝이 난다. 어쨌든, 신(神)의 축복과 저주는 예수교의 무기로서 인간의 코를 뚫어 끌고 다니며 착취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수에 관한 것도 여호와의 축복에 속하는 문제이다.
 예수가 재림하면 말세의 심판과 더불어 예수교인들은 면류관을 쓰고 천당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우주 질서에 영원 불변은 없는 것이므로 천당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재림하게 되면 여호와(예소)의 그 황당한 약속(축복)은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여호와(예수)의 모든 것이 허구(虛構)로 들통나지 않도록 숨겨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가 영원히 재림하지 않는 것이다.
 축복을 저주로 바꾸지 않고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를 재림하지 않게 하는 방법 뿐이다.
 
 예수 이전의 구약(舊約) 시대는 <인간이 범죄했다>를 뒤집어 씌워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여호와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다> 로 속임수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이블을 새로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의 재림(축복)이 실현되면 예수교로서는 큰 낭패가 된다.
 예수교는 그 날로 문을 닫아야 될 것이다.
 여호와(예수)의 재주로는 약속된 천당을 만들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의 재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야, 여호와(예수)의 허구(虛構=축복)가 들통날 염려도 적어지고, 예수교의 돈벌이 사업은 좀 더 연장될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영원히 재림하지 않는다. 이것이 예수교의 허구(虛構)가 들통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제삼자 2011-08-24 (수) 03:37
[여호와(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종이다]


* 종은 주인이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다.

동양의 역대 왕조에서는 혁명으로 권력이 바뀌면, 승자는 "천명이 나에게 임했다."고 선포하게 마련이었다.
단순히 권력욕으로 임금을 거역하여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천명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로 돌려 민심의 화살을 피했던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그것을 "여호와(예수)의 뜻이 나에게로 옮겨졌다."로 변명하여 합리화시켰다.
천명을 아는 사람도 없고, 신의 뜻을 아는 사람도 없지만,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승자쪽에서 선수치며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포해 놓으면, 힘 없고 무지한 일반 백성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게 마련이다.

고려 왕조를 쓰러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운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에도 천명을 빙자한 변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예수교의 바이블에도 예외 없이 승자(사실은 악마)들에 의하여 변명하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바이블의 <시편>은 주로 승자(악마)인 다윗왕 또는 솔로몬왕의 노래로 채워져 있다.

바이블의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를 보아도 여호와는 인간 세상의 승자 즉, 악마들을 변호해주는 종(노예) 노릇을 해 주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바이블 내용과 인류 역사 속에서 여호와(예수)가 해 놓은 일이란 악마들의 언행을 정당화시켜 주는 주구 노릇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심지어 아후라마즈다신의 대리자로서 강력한 신권(神權) 정치를 펴며 군림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들에게까지 "여호와의 뜻이 임했다."며 여호와를 앞잡이로 부려 먹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페르시아에 빌붙어야 됐던 매국노들이 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나라의 예수교에서도, 일제 시대는 물론 박정희, 전두환 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쟁이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주기 위하여 여호와(예수)는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충실히 이행했다.
여호와(예수)는 승자(악마), 기득권자들의 종 또는 앞잡이 구실을 빠짐 없이 해냈던 것이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들은 물론, 유럽의 역대 왕조들도 "여호와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내세우며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악마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여 일단 승자의 자리를 챙취한 후, "여호와(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선포하면 모든 것은 완성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뜻이나 천명을 아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팔아 먹어도 고갈될 염려가 없는 명품이 바로 <여호와(예수)의 뜻>과 <천명>이었던 것이다.

이 <물건>을 약자, 실패자 또는 선량한 사람이 멋모르고 입에 올렸다가는 목숨을 잃어야 된다. 이것이 이단이다.
그러나, 승자 또는 악마가 떠들었을 때는 신(神)의 진리가 된다.
<여호와(예수)>와 <천명>은 악마들의 전용품 노릇을 하는 명품이다. 아니, 그들의 앞잡이 노릇은 물론 종 노릇을 충실히 이행한다.

예수교의 역사는 누가 어떻게 여호와(예수)를 종으로 잘 부려 먹었느냐를 판가름하는 승자(사실은 악마)의 역사이다.
대형 교회, 중형 교회 또는 소형 교회란 목사 이하 그 지도자들이 예수와 여호와라는 종(또는 상품)을 어떻게 부려 먹느냐로 판가름 나는 모습이다.

자신들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어떤 예수쟁이라도 예수와 여호와를 종(앞잡이)으로 부려 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예수와 여호와는 예수쟁이들의 잘 훈련된 종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날로 예수쟁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수쟁이들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이다.
<기도> 후에, 응답을 받았느니, 은혜를 입었느니, 마음이 편해졌느니, 등등의 모든 현상은 예수쟁이(인간)의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결과는 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인간의 뜻에 따라 여호와(예수)는 주인(사람)의 심기에 맞도록 충복의 구실을 하게 된다.

<기도>란 주인(인간)이 종(여호와)을 불러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면, 종이 적당히 알아서 기는 모양이다.
원래, 주인(상전)이 종에게 하는 말 중에는 억지 투정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종 쪽에서 그것을 지적하며 상전에게 항의하는 법은 없다. 종은 무조건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교의 <기도> 모양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주종 관계이다. 예수쟁이가 주인(상전)이고, 여호와(예수)는 하인이다.
인간이 떠드는 <기도(억지)>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기만 하는 여호와(예수). 여호와(예수)는 참으로 길이 잘든 예수쟁이들의 충복이다.
예수쟁이들 마음대로 요리해도 아무 말 없이 순종만으로 외 길을 걷는 충복이 여호와(예수)이다.

존재할 수 없는 허구(虛構)로 태어나서, 인류 사회에다 못할 짓 많이 해낸 여호와(예수). 속죄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만행질을 쏟아 놓은 여호와(예수).
이를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무지와 욕심과 어리석음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여호와(예수). 이에 부화뇌동되어 정신 못차리는 예수쟁이들.
그 무서운 죄악들을 무엇으로 갚음을 하게 되려나?

오히려 신(神)의 두려움을 모르고, 믿지도 않는 무리들이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한 무지막지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신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고, 눈과 귀까지 막고 살아가는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주어진 지능과 이성조차 포기하고, 사람되기를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쉽게 살아가려는 무책임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제삼자 2011-08-27 (토) 03:54
[예수의 사상(가르침)에 대한 고차원적 분석]


A.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B.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는 어렵다.

위의 2 가지 논제 중,
A는 물리적(물질적)인 이야기이고, B는 도덕적(정신적)인 이야기이다.
따라서, A와 B는 서로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관계이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富者)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원래는 밧줄?)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여호와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태 19; 23~24)

부자(富者)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다.
결국, 부자가 천국에 가는 일은 불가능이라는 말이다.
<약대의 바늘귀 통과하기>와
<부자의 천당 들어가기> 비교이다.

얼른 생각하면 성립되는 말 같지만, 전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는 궤변이다.
<약대를 바늘귀로 통과시키는 일>은 어떤 재주(능력)이고,
<부자가 천당에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재주가 아니라, 훌륭한 인격이어야 되기 때문이다.


2)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여호와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태 19;25~26)

인간의 재주로는 약대(밧줄)를 바늘귀로 통과시킬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호와는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전지전능한 재주를 가진 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부터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생각해야 들리는 말이다.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상대로 떠드는 말이 아니다.
즉,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야 천당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돈을 모아 부자가 되려면, 그 과정이 아름답지 못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며,
또, 부자가 된 뒤의 삶이 아름답기도 대단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훌륭한 인격을 닦아야  천당에 들어 갈 자격이 주어지는 것인데, 
부자는 여러가지 사정상 천당에 들어 갈만큼의 훌륭한 인격을 닦을 수가 없다는 경고의 말이다.
천당은 능력이나 재주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호와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예수가 떠들어 놓은 말은 무슨 뜻일까?
도덕적(윤리적)으로 결함이 있건 없건,
재주가 좋은 여호와는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는 말밖에 더 되는가?

사람 쪽에서는 아직도 설익은 상태로 머물러 있는데도,
여호와 쪽의 전지전능한 재주만 있으면 아무나 천당으로 보낼 수 있다 이거지?
이런 것을 자랑이라고 떠벌이는가?

여호와에게는 전지전능한 재주가 있어서,
<덩치가 대단히 큰 약대를 바늘귀로 통과시킬 수 있다>는 말은 성립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에게는 전지전능한 재주가 있어서,
인격적으로 미완성인 사람을 천당으로 보낼 수 있다고 자랑하는 짓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3)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主=예수)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예수)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태 19; 27~28)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예수의 말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제자들의 질문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여호와로서는 할 수 있다>-------------예수의 답변
<제자들이 부모 처자식과 생업을 버리고 예수를 따름>------------인간의 행위

이 경우,
예수의 제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사람이 쟁취한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예수)가 베푼 은혜인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여호와로서는 할 수 있다>는 말과 어떤 관계인가?
생업을 버렸기 때문에 부자가 되지 못한 자격으로 얻은 벼슬인가?
아니면, 여전히 여호와(예수)의 재주가 뛰어나서 나타나는 세상 이치인가?




4) ["또, 내(예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태 19;29)


부모와 처자식과 형제 그리고 재물을 버렸다면, 그 짓은 인간의 행위인가 여호와의 짓인가?
<사람으로는 할 수 없고, 여호와로서는 할 수 있다>는 말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인간 쪽에서 부모 형제 처자식과 재물을 다 버렸기 때문에 천국을 얻었거늘, 여호와가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슨 소리인가?


결국은 모든 것이 인간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내용을 가지고,
<사람은 할 수 없으나, 여호와(예수)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길게 떠들어 대고 있다.

이보다 더 진짜 알짜배기 궤변이 또 있을까?
제삼자 2011-09-28 (수) 03:41
[예수교의 원죄설과 대속설을 논함] 

 
예수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교리는 속량(贖良) 또는 대속(代贖)에 대한 궤변일 것이다.
속량이란 몸값을 받고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서 양민이 되게 하던 일을 말한다.
그리고, 대속이란 남의 죄를 대신하여 당하거나 지은 죄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애 줌을 뜻한다.

그러나, 예수교에서는 속량과 대속을 한 데 묶어서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포로나 노예를 댓가를 주고 사서 자유롭게 해 주거나, 지옥으로 갈 죄를 탕감하여 구원해 주겠다는 뜻이다.

잃어 버렸거나 속박된 자유를 찾아 주기 위한 속량(대속)물에는 금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으로 대신 지불해야 한다.
희생제물(犧牲祭物)이란 어휘의
희생(犧牲)에 牛(소우)자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대속물에는 소나 양 같은 동물의 생명으로 지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여호와는 인간을 속량(대속)해 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동물의 고기를 요구하는지 그 예를 하나만 보기로 하자.

[솔로몬이 화목제(제사 종류)의 희생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22,000 이요, 양이 120,000 이라...]

(열왕기상 8; 63)

히브리 왕국의 제3대 왕 솔로몬은 여호와의 집을 짓는데 7년, 궁궐을 짓는데 13년 도합 20 년의 토목 공사를 끝내고, 여호와에게 14일 동안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제사에서 여호와에게 제물로 바친 소가 22,000 마리, 양이 120,000 마리, 도합 142,000 마리였다고 한다.
여호와는 14 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자그마치 142,000 마리의 소와 양고기를 쳐 잡수신 것이었던 것이었다.
여호와의 밥통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하고, 육식을 무척 좋아하는 신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천지 창조 직후, 여호와는 <가인>의 곡물 제사는 거절하고 <아벨>의 육류 제사만 받아들였었다.
이에 분개한 형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편식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초식보다는 계속해서 육식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예수교의 주신(主神) 여호와는 제물로 곡물과 동물은 물론, 사람의 고기(생명)도 매우 즐겨 쳐 잡수신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고기(생명)도 즐겨 쳐 잡수시는 장면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하자.

[대저 나는 여호와 네 신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에디오피아)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이사야 43; 3~4)

여호와는 히브리 족속의 거룩한 신이라고 한다.
이 신은 히브리 족속을 속량(대속)하기 위해서 애굽과 에디오피아와 스바 사람들의 생명을 대속물로 죽여 버렸다는 뜻이다.
히브리 족속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기 위해서 그 댓가로 다른 민족의 고기(생명)를 희생제물로 삼았다고 한다.

위의 바이블 구절을 신학자 <J. Burnier>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그는 바이블 백과사전도 편찬한 소위 유명한 신학자이다.

"본문에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애굽과 구스와 스바를 속량물로 주셨다(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사야(여호와의 선지자)는 단순히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구원과 그리고 속량의 상징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신학자 <J. Burnier>감각에도 여호와의 잡놈 짓, 망나니 짓을 실감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위와 같이 <상징>이 어쩌느니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되느니> 하며 두리뭉실 얼버무리게 됐으리라.
평생 동안 바이블을 연구하고, 예수교 속에서 밥을 먹고 살아 가는 방법 밖에 다른 재주가 없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변명이었을 것이다.
 
이상에서, 예로 든 곡물, 동물 고기 및 사람의 고기는 오직 히브리 족속을 속량(대속)하여 구원하려는 희생 제물이었다.    
이러한 예수교에서는 마침내 <여호와의 독생자 예수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었다>는 교리를 만들어 내게 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 짓이 어떻게 해서 다른 사람의 죄를 갚아 주는 일이 되는지는 이해가 되지도 않지만,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작자들이 왜 그렇게 복잡하고 이해되지도 않는 방법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까?
 
또, 죽어서 끝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서 먼저보다 더 멋진(?) 삶을 향유하는 것도 죽음이라고 하는가?
예수는 다시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우편에 앉아서 세상에 군림하여 영광을 만끽하고 있대서 하는 말이다.
이상, 말로만 떠들어지는 허구(거짓)를 앞 세워 혹세무민과 갖은 악독을 일 삼는 예수교의 행악에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저러나, 여기 쯤 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호와(예수) 쪽에서 사람을 향하여
<용서해 주겠다>
<속량해 주겠다>
<대속해 주겠다>
<구원해 주겠다> 등등,
이런 말들을 하려면, 사람 쪽에서 여호와(예수)에게 그에 상당하는 범죄를 저질렀어야 될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전체를 아무리 뒤져봐도 또, 인류의 역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사람 쪽에서 여호와(예수)에게 피해(被害)나 위해(危害 )를 준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범죄란 상대에게 어떤 종류의 피해나 위해를 주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일컬음이다.
따라서, 상대에게 피해나 위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사람의 말과 행동 중에 어떤 것이라도 범죄가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거늘, 인간의 죄를 탕감해 주겠다느니, 대속해 주겠다느니, 천당으로 보내 주겠다느니 하며 추근 추근 접근해 오는 여호와(예수)의 그 뻔뻔한 모습을 우리 인간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되는 것일까?
도대체, 인간이 여호와(예수)로부터 용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죄목이 무엇일까?

이 죄목을 바이블에서 찾아 보기로 해 보자.

[여호와라는 신이 그 사람(아담과 하와)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라는 신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 15~17)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라는 것도 있는가?
그러면, 마음씨 착하게 하는 열매, 사기꾼 기질로 바뀌게 하는 열매, 덮어 놓고 예수을 믿을 수 있는 멍텅구리를 만드는 열매 등등, 에덴동산에는 별 별 종류의 나무 열매들이 많았겠네?

그런데, 이상하단 말씀이야!
다른 모든 종류의 열매를 먹어도 된다면서, 오직 선악과만을 먹지 말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 쪽에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여호와(예수)의 다리가 부러진다던지, 애꾸가 된다던지 또는 재산 상의 어떤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가?

하다 못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땅개비(방아깨비)의 다리가 부러진다거나, 여우의 눈이 멀기라도 하는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소나무가 말라 죽거나, 여호와(예수)의 몸뚱이가 근질거리기라도 하는가?
그런데, 어떻게 해서 선악과를 따먹는 일이 죄가 되는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여호와가 에덴동산에다 처음으로 만들어 놓은 인간(아담과 하와)은 몇 살 짜리들이었을까?
갖 태어난 아기 모습이었을까? 1 살 미만의 유아였을까? 탁아소나 유치원생 정도의 연령이었을까?
아니면, 소년이나 청년이었을까, 장년이나 늙은이 모습이었을까?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인간은 에덴동산 안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되어 있었다.
이럴 경우, 인간은 몇 살 짜리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 가도록 되어 있었을까?
아기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가는가? 청소년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가? 아니면, 늙은이 모습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가?

좋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기 모습도 됐다가, 청소년 모습도 됐다가, 노장년도 됐다가, 다시 청소년이 됐다가....이렇게 각 층의 연령대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영생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돌대가리였던 여호와가 이런 재미있는(?) 상상까지 해 봤을 리는 없었을 것 같다.

결국, <인간은 그 놈의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영생 복락을 누리지 못하고 죽게 됐다고 한다.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에, 사랑이 많은 여호와는 자기 아들 <예수>를 대속물로 희생시켜서 인간을 구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상의 <궤변>이 예수교의 근본 교리라고 할 수 있는 <원죄>와 <대속>의 개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궤변은 어디까지나 궤변일 뿐이며, 예수교의 어떤 것에서도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쓰거든 떫지나 말지!>라는 우스개 말이 있다.
<허구, 모순, 궤변이거든 악독하지나 말지!> 예수교(바이블)를 두고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결론 삼아 여담을 한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몸이 아플 때, 치료약은 식전에 복용할 수도 있고 식후에 복용할 수도 있다.
식전에 복용해야 효가가 더 큰 약도 있고, 식후에 복용해야 건강에 더 유리한 약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식전에 복용하던 식후에 복용하던 치료약의 효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선악과(죽는 약)를 먹었더라도, 생명과(영생약)를 먹기만 하면 죽지 않고 영생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생명과(영생약)를 먼저 먹고, 나중에 선악과(죽는 약)를 먹어도 죽지 않고 영생하게 될 것이다.
치료약을 식전에 복용하거나 식후에 복용하거나 마찬 가지 결과에 도달함과 같은 의미이다.


바이블을 보자.

[여호와라는 신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라는 신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

(창세기 3; 22~23)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여호와처럼 선악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악을 아는 지능>은 여호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 영역(권한)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감생심(焉敢生心=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음), 인간이 여호와의 권한을 침범했던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들(여호와는 여러 명이었던 것 같음)이 이구동성으로 열을 내고 있다.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인간 쪽에서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됐더라도, 생명과만 따먹게 되면 죽지 않고 영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영생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려고,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쫓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여호와들의 돌대가리만이 떠들 수 있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이미 <생명과>를 먹어도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는 인간에게 먹이로 허락된 가장 아름다운 열매였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생명과를 너무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더라도 죽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 안에서 몇 달 또는 몇 년을 살다가 쫓겨났을까?
4 시간을 살다가 쫓겨났어도, 에덴동산 중앙에 가장 멋지게 서 있던 생명나무 열매부터 먹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물며, 4 시간 만에 쫓겨나기야 했겠는가? 적어도 몇 년 또는 몇 십 년을 그 동산에서 살았을 것 아닌가?

역시, 바이블 내용(예수교의 모든 것)은 여호와나 예수 같은 돌대가리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궤변, 모순, 허구로 엮어진 악독하고도 수준 낮은 저질의 사기극일 뿐이다.
제삼자 2011-11-22 (화) 14:34
[예수의 저주질]


1) [이튿날 저희(예수 무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 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마가 11;11~12)


2)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나무)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가 11;14)


3)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데,
"랍비(선생=예수)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마가 11;20~21)


예수는 배가 고파서 무화과 열매를 따먹으려 한다.
그러나, 제 철이 아니어서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있었다.
그런데, 이 나무에다 대고 예수는 저주를 한다.

"말라 비틀어져 죽어라.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나무는 즉시 말라죽었다고 한다.
기적질을 보여 주기에 정신이 없어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예수는 남의 과일을 주인의 허락 없이 먹어도 되고, 또 나무를 죽여도 되는 것일까?
저 배고픈 것과 남의 나무와 무슨 상관일까?


여기에서 예수는 다시 더 말한다.
"믿음만 있으면, 산(山)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대로 된다."고.
그런데, 그런 멋진? 기적질을 보여 주지는 않고, 멀쩡한 나무를 저주하여 죽일 이유가 무엇일까?
미쳐도 보통으로 미쳐서는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수 십 년 전, 제자 한 학생에게 질문했었다.
"능력이 있다면, 나무를 저주하여 죽이는 사람이 있을까?"
학생 왈, "쓸 데 없는 짓을 무엇 하려고 해요?" 대답은 아주 명쾌했었다.


천지를 창조했으면 다 된 것이다. 
무엇을 하려고 바다를 가르고, 병을 고치고, 나무를 죽이고...그게 무엇 하는 짓일까?
있지도 않은 기적질 이야기로 참으로 많은 사람을 농락하고 있구나.

결국, 바이블 속의 모든 기적질들은 천지창조(엄청난 기적)를 허구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 되고 만다. 
바이블은 예수(여호와)의 존재와 그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을 자세히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제삼자 2012-02-07 (화) 16:46
[더럽고 치사한 잡놈]


예수교(바이블)에서 말하는 여호와(예수)가 정말로 천지를 창조하고, 그것을 임의로 다스리는 신(神)이라면, 나는 그 신을 <더럽고 치사한 잡놈>이라고 단정한다.

인간으로 하여금 1,000 년, 10,000 년을 살게 해주는 것도 아니며, 겨우 100 살도 허락하지 못하면서,
그 짧은 인생 중에도 필설로는 그려낼 수 없는 고통(비극)을 안겨주는가 하면,
늙어서 우굴쭈굴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병을 앓다가 초라하고도 비굴한 모습으로 죽어가도록 세상을 이끌어 가는 악질(惡質)을 어떻게 좋게 보아줄 수가 있겠는가?

짧은 인생일망정 젊고 아름답게 품위를 유지하며 살다가 죽게 하면 무엇이 잘못되는가?
아니, 살아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죽여지는 짓은 왜인가?
전지전능해서 못하는 게 없다는 녀석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짓을 보면 좋게 보아줄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여호와(예수)는 인간과 무슨 원수진 게 있기에 인간을 그렇게 잔인하게 인도하고 있을까?
도대체 인간이 언제 태어나고 싶다고 소원하기라도 했는가?
도대체 무슨 심보짝으로 인간을 억지로 동원시켜 놓고서, 이게 무엇을 하는 짓일까?

그리고 무엇을 어쩐다고?
제 놈을 믿지 않는 사람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지옥으로 보내어, 그 고통으로 영원토록 이를 갈게 하겠다고?

이런 못된 녀석을 가리켜 <더럽고 치사한 잡놈>이라는 표현이 제대로 된 것일까?

더 설명하지 않겠다.
입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고, 공연히 흥분되어 마음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예수)는 더럽고 치사한 잡놈이다>로 대신하려고 한다.
달리 적당한 어휘와 문장을 만들어낼 재주가 내게는 없으니...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도 있지만,
더럽고 치사한 잡놈(여호와=예수)을 사랑의 신(神)이라며 감싸고도는 예수쟁이들에 대해서는 더욱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 더럽고, 치사한 잡놈에다 바보 + 악질 + 뺀들뺀들) 이런 의미를 가진 어휘는 없는 것인지?
TV에서는 수시로 <바른 말 고운 말 쓰기> 운동을 벌이기도 하던데, 예수교의 내용을 바르게 알리기(표현하기) 운동을 벌일 그런 계획은 없는 것인지?

눈웃음과 사랑이란 용어를 앞세우면서 수 천 년 동안 못 된 짓만 골라서 쏟아 낸 예수교의 모든 것을 바르게 알리는 일보다 더 훌륭한 <바른 말 고운 말 쓰기> 운동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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